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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벌이 아닌 국민기업을 만들다, 포스코 이야기 / 소비더머니
채널: 소비더머니 | 길이: 23:47
자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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@[00:00] 지난 2011년 삼성 이재용 회장이 한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러 나타났는데, 놀라운 추모의 말을 합니다.
@[00:11] 이런 비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, 저 스티브 잡스가 IT 역대에 끼친 영향이라고 산업과 사회에 남겨 주신 그런 좋은 유산과 업적이 몇 배 더 비싸지 않아요.
@[00:22] 우리 사회에 우리 집 이런 발전된 경제를 같이 만드는 데도 불가능하죠.
@[00:32] 아니, 삼성 회장이 이 정도로 칭송하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. 그리고 이 인물이 일으킨 기적은 어떤 곳이길래, 이들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이 발전한 한국 경제도 없었을 거란 얘기가 나올까. 좀 과장된 거 아니야 싶을 수도 있는데, 사실 진영을 떠나서 많은 이들이 똑같은 얘기를 해왔죠.
@[00:48] 아내 같은 생필품에서부터 기계, 건설, 조선, 자동차, 전자 등등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경제를 일으킨 여러 기업이 성장할 때 바탕이 돼 준 철. 그리고 다들 안 된다고 하던, 돈도 경험 있는 사람도 없던 시절에 맨땅에서 철을 만든 제철소를 일군.
@[01:07]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 출발했으니까요.
@[01:10] 저희가 느끼는 것, ‘조국이 철’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만은.
@[01:19] 인류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.
@[01:20] 어쨌든 잡념은 버린다.
@[01:24] 수많은 사람이 이제 한국에서 이런 성공이 다시 있기는 쉽지 않다, 어렵다.
@[01:29] 아니, 불가능하다구요.
@[01:31] 이제는 옛날과 세상이 달라졌다. 한두 사람이 애를 쓴다고 바뀌는 게 뭐 얼마나 있겠냐고 하지만요.
@[01:33] 그래서 오히려 준비해봤습니다.
@[01:37] 이번 주제는요.
@[01:40] 불가능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 경쟁력의 철강 기업이 된 포스코, 그리고 포스코를 일군 박태준 회장입니다.
@[01:49] 다들 불가능하다는데 맨땅에서 포스코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일었어. 그러면 이 회사를 일으킨 사람은 재산이 얼마나 될까요.
@[01:54] 그러면 회사 지분은 몇 퍼센트나 가졌을까. 게다가 군사정권 시절이었으니까.
@[02:00] 적어도 뭐 수천억, 아니면 뭐 재벌이 됐을까. 자, 오늘 소비더머니 편은요.
@[02:05] 인생을 바쳐서 포스코를 세웠지만 정작 회사 주식은 한 주도 갖지 않았던 거인, 청암 박태준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합니다.
@[02:09] 자, 일제강점기 시골 마을에서 자란 6살 소년이요.
@[02:14] 생계를 위해서 고국을 떠나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.
@[02:18] 일본 사람한테 이길 수 있는 게 뭐가 있니,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죠.
@[02:25] 공부해서도 운동에서도.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학생들까지 전쟁터로 몰아넣을 땐데, 이공계한테는 징병연기를 할 수 있게 해줬대요.
@[02:28] 그래서 잠을 줄이면서까지 공부해서 일본 와세다대학교 공대 합격합니다.
@[02:32] 그런데 곧이어 일제가 패망하고요.
@[02:36] 우리에겐 광복이 찾아오죠.
@[02:40] 대학생이 된 박태준은 일본에 머물지 않고, 부푼 마음으로 조국에 돌아오죠.
@[02:44]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고향 땅에 내 역할이 있을 거야. 그런데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어요.
@[02:47] 수많은 공장이 있고 소위 근대화된 일본과 달리요.
@[02:51] 공장이 뭐야, 전깃불도 안 들어오고 상수도도 없고.
@[02:57] 그래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갔더니, 이번에는 대학은 물론이고 온 사회가 이념 갈등에 사로잡혀 있고. 근데 또 정치판에 뛰어들기는 싫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해도 일자리도 없고.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가니까.
@[03:10] 결심을 하죠.
@[03:14] 그래, 내가 원하는 기계공학 엔지니어의 길을 갈 수 없다고 계속 이렇게 가만히만 있을 순 없지. 그리고 미군정이 단기간에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서 만든 사관학교에 들어갑니다.
@[03:18] 그리고 사관생도 시절,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인연을 만나죠.
@[03:24] 탄도학 시간이었어요.
@[03:26] 탄도 궤적 계산하는 문제를 두고 교관이 풀어볼 사람을 찾는 거예요. 이 분위기가 어떤 건지 아마 아실 거예요.
@[03:31] 수업시간에 왜 선생님이 어려운 문제를 딱 내놓고 칠판에 적어놓죠.
@[03:34] 그리고 풀어볼 사람, “어떻게 하면 어때요?”
@[03:37] 눈을 안 맞으시려고 딴청 피우고 있고, 딴 데 보고 있고 그러잖아요.
@[03:40] 그런데 박태준 생도는 일본에서 대학 입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치렀던 사람이잖아요.
@[03:45] 특히 수학이나 과학이 잘했다고 하고요.
@[03:47] 다들 엄두도 못 내던 문제를 박태준 생도가 슬슬 풀어냅니다.
@[03:49] 당연히 이 교관은 특히 강한 인상을 받았겠죠.
@[03:54] 물론 생도로서도 교관을 기억했을 거고요.
@[03:58] 자, 그랬는데 시간이 흘러서 박태준이 임관을 하고 6.25가 발발하고요.
@[04:02] 전쟁이 끝나고 6군대학에 들어가서 수석 졸업하고, 육군사관학교에 부임하고 결혼을 하고, 국방부 인사과장이라는 요직에 있던 시절에 10년 전에 교관이 박태준을 찾아옵니다.
@[04:06] 바로 박정희 소장이었어요.
@[04:12] “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.” 박태준은 요직을 떠납니다.
@[04:15] 그리고 일선에서 지휘관이 되죠.
@[04:19] 자, 그런데 이렇게 누구를 따르든, 어느 자리에 가든, 이전에도 이후에도 박태준 일생을 관통하는 태도는 변치 않았어요.
@[04:24] 국방부에서 인사업무 하던 시절에 온갖 청탁이 들어오는데도 그걸 물리쳤듯이, 일선 지휘관이 돼서도 똑같았대요.
@[04:31] 하루는 이런 일이 있어. 부임을 해가지고 첫 번째 업무가 김장을 대량으로 해야 되는데, 김장하는 현장에 갔는데 매운 냄새가 안 나는 거예요.
@[04:37]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고, 양동이에다 뭘 퍼 와봐 해서 고춧가루를 거기다 넣는데 톱밥 같은 게 건져지는 거예요.
@[04:45] 그래서 당장 담당자를 불러 가지고, “이런 걸 병사들한테 줘? 반역자다.” 쫓아내 버리고,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요.
@[04:50] 고춧가루 납품업자까지 불러들입니다.
@[04:56] 그래서 혼을 내는데, 혼내니까 이 업자가 쫓겨나듯이 가다가 다시 와가지고 뭘 했느냐, 두툼한 봉투를 건네는 거예요.
@[05:01] 그렇게 봉투를 주니까 어땠을까. 뭐 영화에서 나오듯이 “같은 식구 아닙니까” 뭐 이런 거, 뭔지 알지, 그렇게 나왔느냐? 아닙니다.
@[05:09] 권총을 꺼내 가지고 “당장 쏴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”고 하고요.
@[05:10] 근데 이 업자가 혼자 그랬겠어요.
@[05:13] 이런 업자들이랑 연결되어 있는 윗선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.
@[05:17] 윗선에서 봐주라고 압력이 들어오는 거야. 이렇게 압력이 들어오니까 다시 불러 가지고 “다음부턴 잘 하셔.” 그랬느냐? 아닙니다.
@[05:23] 직접 서울로 올라가 가지고 고춧가루를 사러 가죠.
@[05:27] 그런데 훗날 제철소를 지을 때도 그랬거든요.
@[05:28] 부실공사 정황이 보이니까,
@[05:31] 다이너마이트로 아예 폭파시킬 정도로요.
@[05:35] 그런데 왜 매사에 이렇게까지 했을까.
@[05:38] 인연에 따라서 좀 다른데요.
@[05:44] 어떤 사람은 박태준이 생도 시절을 그렸다고 하고, 또 어떤 사람은 6.25가 끝나고 나서 그가 결심하고 좌우명을 정했다고 하는데, 아무튼 박태준이 왜 이렇게 살았는지가 느껴지는 좌우명이죠.
@[05:50] “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, 절대 절망은 없다.” 다른 나라보다 훨씬 늦게, 가난하게 시작한 한국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.
@[05:59] 그러면 이 땅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거겠죠.
@[06:07] 다시 돌아가서, 아무튼 그렇게 요직을 버리고 한직에 가더라도, 군에서 같이 움직였는데요.
@[06:14] 4.19에 이어서 5.16이 일어나고, 그렇게 따르던 교관이 최고 권력자가 되죠.
@[06:19] 그러자 정치를 잘 모른다면서 사양하는 박태준한테 최고 권력자가 비서실장 자리를 맡겼는데, 이번에는 또 스스로 비서실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요.
@[06:27] “저는 정치 잘 모릅니다.”
@[06:32] 계속 이렇게 나오는 거지. 그리고 나서 경제 분야 자리를 맡아서 기업인들, 경제학과 교수들 만나서 실물과 이론을 배우고, 또 통상사절단으로 선진국을 방문하고. 그러다가 다시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는지, 이번에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합니다.
@[06:37] 아니,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요지를 계속 준다고 하는데, 그걸 다 물리치고 공부하겠다는 거예요.
@[06:42] 장관 자리 준다.
@[06:49] 국회의원 공천 준다. 그러면 중요한 자리가 당연한데도 모두 다 사양하고요.
@[06:54] 자, 그런데도 박태준한테는 계속 중요한 업무가 맡겨지죠.
@[06:59] 그리고 한국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큰 책임이 맡겨집니다.
@[07:05] 가장 큰 수출 품목이었던 텅스텐을 생산하던 대한중석, 적자투성이 맡아서 살려보라. 그리고 박태준이 사장으로 부임한 뒤에 실제로 대한중석은 금세 흑자로 돌아서죠.
@[07:13] 그때는 주요.
@[07:16] 수출품이 뭐 지하자원, 수산물 뭐 이런 시절이에요.
@[07:18] 그리고 이렇게 대한중석을 흑자로 돌려놓은 뒤에 대통령으로부터 비밀리에 특명을 받습니다.
@[07:21] “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산업의 쌀, 철이 필요합니다.”
@[07:24] “자네가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보세요.”
@[07:29] 당시의 상황이 어땠냐면요.
@[07:30] 일제 강점기에 제철소다운 제철소는 다.
@[07:34] 북쪽에 있었죠.
@[07:38] 그리고 분단되고 나서 한국에 남은 건 사실상 별로 없었고. 그래서 건국 초기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제철소를 만들려고 애를 썼는데 60년대 중반까지는 일이 전혀 안 풀리는 상황이었어요.
@[07:43] 워낙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돈은 물론이고 기술자도 없잖아요.
@[07:50] 그러니까.
@[07:50] 고철을 녹여가지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봤자, 철 생산량이 어땠냐면 일본의 200분의 1, 북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, 미국 같은 데는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득하게 멀리 있고 뭐 이런 상황이니까.
@[08:03] 도로를 깔려고 해도, 항만을 만들려고 해도, 공장을 지으려고 해도 필요한데 다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인 거죠.
@[08:10] 돈이 없으니까 그걸 제대로 할 수가 없고.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, 급기야 정부가 주도해서요.
@[08:16] 미국, 유럽에서 차관을 끌어와가지고 나라, 기업들이 참여하는 대한국제제철차관단이라는 걸 만들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서 종합제철소를 만들려고 하는데, 이게 시간이 뭐 1년, 2년, 3년 계속 흘러도 매번 거듭해서 안 풀립니다.
@[08:22] 선진국 업체들도 그렇고 국제기구도 그렇고 자꾸 조건을 덧붙이는 거죠.
@[08:28] 아니, 우리는 급해 죽겠는데 “뭐 사업성이 있는지 검토를 해보자.” 만약에 제철소가 지어진다고 해도 가동은 선진국 업체들이 맡아야 하죠.
@[08:34] 그리고 제철소 지을 돈은.
@[08:42] “빌려줄게. 근데 짓는 것도 그렇고, 가동도 니네가 하면 안 되고.” 이런 식이죠.
@[08:45] 왜 지어야 돼. 근데 이게 지어봤자 결국은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도 있잖아요.
@[08:49] 근데 그렇게 까다롭게 조건을 달고 나서도 차관을 또 바로 내주는 것도 아니었죠.
@[08:54] 산업이 발전할수록 철강 수요는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데, 우리는 경제를 발전시켜서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. 자, 바로 그러던 시절에 은밀하게 특명을 받았던 박태준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어요.
@[08:59] 일본에 있던 인맥을 활용해서 패전 뒤에 제철소를 만들어서 성공시킨 사람들을 만나고요.
@[09:04] 차관을 내주겠다던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는데, 동시에 일본 업체들한테도 조사를 맡깁니다.
@[09:08] 왜 그랬을까요.
@[09:13] 한쪽 말만 듣고 덤터기를 쓰면 안 되니까요.
@[09:18] 미국이랑 유럽 업체들이 하는 걸 보니까.
@[09:25] 차관을 내줄지도 모르겠고, 설령 돈을 내준다고 해도 그쪽에서는 뭐 한국은 그냥 뭐 적당한 규모로 만들어, 하는 식이었으니까요.
@[09:32] “우리 기계 가져다가, 좋은 기계도 아니야. 이게 적당히 짜 맞혀 가지고 맞추면 얘네도 좋고, 우리도 좋고” 하잖아.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었어요.
@[09:39] 우리 정부 인사의 요청으로 고국에다가 제철소 짓는 일과 관련해서 조사를 하고 있던 롯데 신격호 창업주. 당시 일본에서 거부가 된 상황이었으니까.
@[09:48] 돈 없는 우리 정부 쪽에서 부탁을 한 거였죠.
@[09:52] “신 회장님, 한번 해보면 어떻습니까.” 이렇게 한 건데, 박태준이 신격호를 만나서 롯데 측에서 조사한 자료를 또 넘겨받았던 거죠.
@[09:58] 만약에 이때 신격호 회장이 일을 계속해 가지고 제철소 짓는 일을 맡았다면요.
@[10:01] 포항제철이 아니라 지금 롯데제철이 됐겠죠.
@[10:04] 포스코가 아니라 로스코, 이렇게 됐을 수도 있어요.
@[10:08] 아무튼 특명을 받고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박태준, 당시 대한중석 사장은요.
@[10:13] 1967년 드디어 공식적으로 종합제철소 건설 추진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수면 위로 등장합니다.
@[10:18] 곧이어 포항에서 종합제철소 기공식이 열리고요.
@[10:23] 이듬해였던 1968년 4월 1일,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창립하죠.
@[10:44] 그런데 특이한 건요.
@[10:47] 포항제철이 국영기업이 아니라 상법상의 주식회사, 민간기업 형태로 만들어졌던 거예요.
@[10:51] 물론 뭐 정부 지분은 많았지만, 이게 왜 그랬을까. 일단 박태준 사장은요.
@[10:56] 군 시절부터 보니까 중요한,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일일수록 소위 센 사람들로부터 각종 청탁이 엄청나게 들어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.
@[11:00] 뭐 공무원들이 개입도 많고. 실제로 제철소 입지를 포항으로 정할 때도요.
@[11:05] 권력자들이 자기 고향에다가 짓게 하려고 난리였으니까.
@[11:12] 제철소 건설이라는 게 맨땅에다가 초집중해서 전력을 다해도 어려운 일인데, 정치적인 외풍에 관료들 입김에 이걸 직격탄으로 맞으면 그렇게 해서 일이 안 된다 싶었던 거겠죠.
@[11:21] 그리고 일본에서도 제철소를 처음 세우면 수십 년 동안 적자가 나지 않았냐, 버틸 수 있겠냐, “그냥 구경으로 가자.” 이렇게 걱정하는 대통령한테도 그랬다고 하죠.
@[11:32] “민영으로 가야 초기 멤버들한테 책임감이 더 생길 겁니다.”
@[11:36] 왜냐면 국영기업이 아니라 민영회사에서 실패했으면 갈 데가 더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.
@[11:40] 게다가 우리가 지금은 제철소도 없는 상황이지만, 이걸 꼭 성공시켜 언젠가는 수출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.
@[11:46] 그러려면 구경으로는 안 됩니다.
@[11:52] 다른 나라에서 딴지를 할 겁니다.
@[11:57] “오케이, 반드시 성공시키자.” 그리고 대통령에게 했던 말처럼, 포항제철 창립식에서 박태준은 이렇게 얘기하죠.
@[12:02] 만약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, 우리는 이건 뭐 무슨 죽는다, 어떻게 한다 해가지고 금메달에 적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.
@[12:18] 그리고 창립사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데려온 창립 멤버들한테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죠.
@[12:21] “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회사를 만들고, 부패를 근절한다.”
@[12:26] “한국인과 일본인은 우열의 차이가 없는데, 우리가 종합제철을 잘해서 민족의 자존심도 세우고 우리도 일본처럼 한번 잘 살아보자. 밥만 먹다가 죽을 순 없다.”
@[12:37] 하지만 이러한 각오와 달리요.
@[12:40] 포항제철이 지닌 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죠.
@[12:43] 사실상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영일만 근처에 드넓은 모래사장에다가요.
@[12:46] 나무로 지은 60평짜리 현장사무소가 전부였어요.
@[12:51] 현장사무소 이름을 롬멜 하우스라고 했대. 뭐 이런 상황이고, 제철소 건설 차관도 아직 안 들어왔는데 박태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 은행장을 찾아서 대출을 받아와요.
@[13:00] 그리고 뭘 했느냐, 의외의 지시를 먼저 합니다.
@[13:04] “인재를 모으려면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. 사원 주택을 짓자.” 그리고 학교도 짓고, 주거환경을 바꿔 나가자. 이러니까.
@[13:10] 어떤 반응이 나왔느냐, 정치권, 언론 할 것 없이 난리를 쳤다 등등. 근데 이런 여론도 있었지만,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에서 제철소 건설 차관을 안 주고 있던 거예요.
@[13:19] 한국은 제철소를 지어봤자 경제성이 없다면서. 오죽했으면 건설 현장을 찾은 대통령마저.
@[13:30] 허허벌판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고 하죠.
@[13:35] “이거 남의 집 바로 놓고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건가.” 듣는 마음이 얼마나 그랬겠어요.
@[13:40]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 박태준의 꿈은 머리와 가슴속에서 현실의 사진, 뭐 영상과 같이 시각화가 돼 있었던 걸까요.
@[13:44] 제철소도 제대로 못 짓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 숙소부터 짓고 난 포항제철은요.
@[13:52] 직원들을 이번에는 해외 제철소로 연수를 보냅니다.
@[13:56] 물론 또 당시에 박태준 사장이 특명을 내렸죠.
@[14:01] “보고 들은 걸 머릿속에 가득 담아와서 전파하라. 다 긍정적으로 보면 좋아.” 그러면 해외 차관 도입이 성사가 돼 가지고 제철소를 지어서 돌릴 일만 남은 거죠.
@[14:08] 아주 긍정적으로 보면. 그런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끝내 돈을 다 안 빌려주겠다는 뜻을 밝힙니다.
@[14:13] 빌려줘봤자 너네 안 된다는 거죠.
@[14:17] 그리고 뭐 중남미나 서남아 국가들처럼, 미국·유럽 기계 사가지고 적당히 돌리면 돈, 지배층도 좋고 우리 좋다는데, 그런 생각이 없다니까.
@[14:26] 어디 감히 큰 꿈을 꿔, 그랬던 걸까요.
@[14:28] 자, 근데 아까 박태준의 좌우명 중에서 무슨 말이 있었죠.
@[14:29] “절대 절망은 없다.”
@[14:33] 그래서였는지 아이디어를 냅니다.
@[14:36] 한일 양국 정부가 농수산업에 쓰기로 합의한 대일청구권자금의 무상자금을요.
@[14:41] 제철소 건설을 위해서 돌려보자.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에 앞서서 일본 철강업계의 기술 지원과 협력을 약속받아보자. 이 아이디어를 대통령과 상의해서 의기투합을 한 뒤에 일본 인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.
@[14:53] 직접 날아가세요.
@[14:57] 그리고 어떻게 됐느냐, 결국 미국과 유럽 기업의 차관은 무산됐지만요.
@[15:00] 박태준이 일본 철강업계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고 청구권자금 전용이 가능해지면서요.
@[15:04] 포항제철은 황무지에서 본격적으로 제철소를 짓기 시작하죠.
@[15:07] 당시의 박태준은 모래 벌판에선 직원들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.
@[15:11] “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입니다.”
@[15:14] “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고, 우리 농민들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.”
@[15:20] “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.”
@[15:22] “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.”
@[15:25] “기필코 제철소를 성공시켜서 나라와 조상의 은혜 보답합시다. 제철보국은 우리의 생활 신조요.”
@[15:28] “인생철학이 되어야 합니다.”
@[15:34] 대일청구권자금이라는 게 무상자금도 있었고, 유상자금도 있었고, 경제협력 자금도 있어 가지고 무상자금은 뭐 어디에 써야 하고, 유상자금은 어디에 쓰여야 하고, 이렇게 용처가 다 정해져 있었어요.
@[15:42] 하여튼 합의를 해서, 이게 한국에서 일본을 설득하려면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“아니, 제철소를 짓겠다는데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지어” 이렇게 나올 거 아니에요.
@[15:52] “제철소를 도와준대? 누가?” 일본 철강업계가 도와준답니다.
@[15:59] 이렇게 갖고 온 거죠.
@[16:07] 합의문을, 그러니까 이 순서가 일본 철강 회사들을 설득해서 OK를 시키고, 일본 정부가 OK를 하고, 합의를 해서 돈의 용처를 바꿔나간 거죠.
@[16:15]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.
@[16:23] 만약에 돈이 처음에 정해졌던 대로 농림수산업에만 쓰였으면, 나중에 경제 효과가 어떻게 차이가 났겠느냐. 그러나 결국은 사람이 이런 어려운 거대한 일을 해 내려면 반 정도는 거의 미쳤다라고 제3자들의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해내기 어렵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제가 경험한 하나의.
@[16:32] 어떤 결론이라 그럴까요.
@[16:38] 자, 1억 불이 넘는 돈이 생겼으니까.
@[16:40] 제철소를 짓기를 시작하는데, “야, 이제 됐다”라고 하는데 수많은 인사청탁, 납품 청탁이 들어오는 거죠.
@[16:47]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은 원칙을 지키면서 제철소를 지어 나갔어요.
@[16:51] 박태준과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, 그리고 박태준에게 건의사항을 종이에 적으라고 한 다음에 위에다가 직접 서명을 해줘서 일종의 종이 면패를 만들어 주면서까지. 또 10여 차례나 건설 현장을 찾았던 최고 권력자의 지원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죠.
@[17:02] 그리고 시간이 3년쯤 흐른 1972년 6월 8일,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 불이 들어갑니다.
@[17:14] 화입식이라고 하죠.
@[17:15] 그로부터 21시간이 지나고요.
@[17:16] 마침내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죠.
@[17:17] 회사가 창립한 지 5년이요.
@[17:20] 황무지에 제철소를 짓기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종합제철 일관 공정이 완성됩니다.
@[17:24]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발판이 드디어 마련된 거죠.
@[17:30] 포항제철은 가동 6개월, 첫해부터 흑자를 했습니다.
@[17:32] 유례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.
@[17:35] 다들 놀랍대요.
@[17:38] 대통령이 그렇게 서류가 올라왔는데 “이거 뭐 0 더 붙은 거 아니야, 잘못된 거 아니야” 그랬죠.
@[17:41] 일본도 50년 동안 적자였는데, 우리가 이게 어떻게 하냐는 거야. 뭐 이런 거죠.
@[17:44] 그리고 2기, 3기로 확장. 또 제철소를 광양에 짓기로 하면서 승승장구했죠.
@[17:47] 이러한 포항제철의 성공은 포항제철만의 것이 아니었어요.
@[17:52] 일본보다 절반 이하로 싼 가격에 철을 공급한 포항제철 덕분에 인프라 건설업, 조선, 가전 등등 수많은 산업이 함께 커갈 수 있었죠.
@[17:58] 평소에 누가 일본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박태준 회장은요.
@[18:06] “지피지기”란 철학을 얘기했다는데요.
@[18:11] 알아야 이용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. 근데 아마 포항제철의 성공에 가장 놀라워 했던 건, 포철의 성공에 회의적이었던 국내의 인사들과 해외 업체들도 있었겠지만요.
@[18:17]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일본 쪽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.
@[18:22] 자기들이 초기에 이런저런 영향을 줬지만, 설마 이 정도까지 할지는 몰랐을 테니까. 이뿐만이 아니고요.
@[18:26] 포항제철은 설립 초기부터 그랬듯이 지속적으로 직원들을 위해서 지역사회와 주거환경을 변화시켰고요.
@[18:33] 유치원부터 만들고 중고등학교를 키우다가 아예 대학까지 만들었죠.
@[18:38] 포항제철은 “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만들었다. 이제 대한민국이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 필요하다. 그럼 그런 대학을 포항제철이 만들겠다”면서 세운 게 바로 포항공대죠.
@[18:50] 이거 좀 딴 얘기 같지만, 국내 최초의 실업 축구단, 프로축구단 창설을 이끈 것도 박태준 회장이었어요.
@[18:57] 나라가 못 살 때도 축구 경기는 할 테니까. 또 한일전 등등도 치러야 하는데 선수들 지원이 필요하니까 축구단을 직접 차린 거죠.
@[19:05] 그리고 축구단 만든 게 아니라,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구장 스틸야드를 신경 써서 지은 것도 박태준. 정부에서 “땅도 없고, 돈도 없고, 못 짓겠다” 하니까, “그럼 우리가 짓겠다”면서 포항제철이 만들었죠.
@[19:13] 이름이 진짜 멋있지 않니. 포항제철이잖아, 철을 만들어. 근데 축구 전용구장 이름은 스틸야드. 근데 이 스틸야드 덕분에 어떤.
@[19:23] 일이 있었냐면요.
@[19:25] 2002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위해서 90년대 중반에 FIFA 실사단이 한국을 찾았거든요.
@[19:27] 근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대요.
@[19:31] 이탈리아였는데 한국이랑 월드컵에서 붙으니까 마케팅 올리는 거지. “쟤네는 무슨 축구 전용구장도 없는 나라에서 무슨 월드컵을 하냐” 이렇게 비아냥거리는데. 그리고 또 이렇게 실사단이 찾았는데 월드컵 전용구장 있는 거지. 한국에도 축구 전용구장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소가 바로 스틸야드였죠.
@[19:47] 포항제철이 한국 경제를 위해, 포항공대를 비롯한 학교들이 한국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듯이, 한국 축구를 위해서 구단과 경기장을 만들어서 결국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거죠.
@[20:06] 그리고 대통령이 바뀌고 80년대 중후반, 정부가 포항제철 주식을 장외 매각해서 재벌 손에 넘기는 것 아니냐 이런 의혹이 불거졌는데, 이게 결국 무산되고 박태준이 당초했던 약속대로요.
@[20:14] 포철에 발행주식 일부를 사원들에게 배정할 수 있게 됐는데, 1988년에 포항제철 임직원 1만 9천여 명이 전체 포항제철 발행 주식의 10%를 우리사주로 배정을 받았거든요.
@[20:22] 그러니까 당연히 당시에 박태준 회장한테 얼마를 배정받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.
@[20:29] 0.1%가 아니라 0.01%만 있어도 그게 얼마예요.
@[20:39] 그런데 어땠느냐, 박태준 회장은 단 한 주의 주식을 받는 것도 거부했습니다.
@[20:45] “포항제철은 조상들의 피로 세운 회사다. 공적인 일을 할 때 사욕이 있으면 안 된다”면서요.
@[20:52] 이상하지 않아. 그때는 뭐 주식을 배정을 받는다고 해도 뭐라고 안 했을 거예요.
@[20:58] 별로. 실제로 공이 있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위기였으니까. 근데 한 주도 안 받았어. 또 포항제철소에 이어서 광양제철소 완공을 앞두고서는요, 철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게 될 게 앞으로 분명하니까 이동통신사업 진출 계획을 세우고요.
@[21:04] 또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이 IT 사업에 10년.
@[21:12] 이상, 조 단위로 거액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는데요. 이 조 단위라는 게 매년이요.
@[21:19] 포항제철에서 그랬고, 교육사업에서 그랬고, 지역사회에서도 그랬고, 축구에서도 그랬고. 이게 정말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.
@[21:26] 하지만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포항제철과 박태준의 계획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.
@[21:32] 그리고 25년에 걸쳐서 포항제철을 일군 박태준에게 돌아온 건, 망신을 주듯이 이뤄진 세무조사와 수사, 그리고 기소. 또 추방과 같은 해외 체류기간 4년이었어요.
@[21:39] 시간이 흐르고 다시 돌아와서 명예회복을 한 박태준은 집을 팔아서 기부하고,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포항.
@[21:48] 제철에서 이름을 바꾼 포스코인으로 살았죠.
@[21:53]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 연설에서도 포스코가 어떤 회사인지를 강조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.
@[21:59]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회사의 종잣돈이 조상들의 피의 대가였던 사실이 있는 곳입니다.
@[22:06] 대일청구권자금, 식민지배 배상금의 일부로써 우리 포항 1기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.
@[22:20] 이제 포스코는 제철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죠.
@[22:26] 이제는 무슨 배터리 기업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로. 근데 지금 그럴 수 있는 바탕에는 피의 대가라는 대일청구권자금, 박태준의 리더십과 그걸 뒷받침했던 수많은 포항제철 직원들의 인생을 건 노력, 그리고 국민들의 성원이 있었을 테고요.
@[22:32] 보통 제가 소비더머니 끝부분에 “이 회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?”
@[22:38] “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?”
@[22:43]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, 포스코 편에다가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.
@[22:51] 그래서 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경제, 그리고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고, 우리는 어떻게 살면 좋겠냐고, 지금도 다시 묻고 싶은 거. 박태준 회장의 마지막 연설로 이번 편 마무리하겠습니다.
@[23:31] 순간 너의 숨결 모든 것을 전부 넘어선 손에 꺾던 괴물이 많아서 다시 또 이런 햄버거울 텐데